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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대만사람들은 약속을 가볍게 생각하기도 한다.

by 늘보랑 2022.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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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어학연수를 하면서 초반에는 학교에 다니느라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많이 없었다.

그러다 한번 어학당에서 언어교환을 신청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한 대만 친구를 자동 컨텍으로 만나게 됐다.

그렇게 메시지로 몇 번의 연락을 주고받은 후 약속을 잡았는데, 첫 번째 약속은 비가 많이 와서 취소를 했고, 두 번째 약속은 과제가 많다며 취소했고, 세 번째 약속은 무려 깜빡했다며 취소해버렸다. 

그렇게 몇 번이나 약속과 취소를 거듭한 뒤 만난 적이 있었다. 

그 후로도 만나려고 몇 번 약속을 잡았지만, 자주 약속을 취소해서 결국은 만남이 이어지지 않아 금방 연락이 끊겨버렸다.

그때는 그냥 그 아이가 엄청 바쁜 아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 같다. 

그 뒤로 대만에 더 길게 거주하게 되면서 중국어 실력이 많이 늘어, 한국어 과외를 하게 됐다.

대만 아르바이트 평균 시급이 당시 150~160원 정도였는데 한국어 과외를 하게 되면 시간당 400~500원을 받을 수 있었고, 한화로 계산하면 21,500원 정도였다.

대만 물가를 생각하면 엄청나게 센 시급이고, 한국 유학생들은 한류 열풍의 덕으로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을 구하는 게 매우 쉬워서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선택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과외를 시작하고 처음엔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의 신청에 시간을 내는 게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은 내 생각만큼 수업에 많이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유는 계속되는 수업 약속 취소였다.

처음 수업시간을 조율할 때 서로 비는 시간을 협의해서 약속을 잡았지만 수업 첫 회부터 약속을 취소하기도 했고, 첫 회 이후에는 계속 시간 약속을 바꿔버리곤 했다. 

그나마 수업 전날, 수업 몇 시간 전에 수업을 취소하겠다고 연락을 주는 학생들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수업장소로 가고 있을 때 수업을 취소하겠다고 연락 주는 학생도 있었고, 심지어 나는 수업장소에서 학생을 기다리고 있는데 나타나지 않은 친구들도 꽤 있었다. 

한국어 과외가 시급으로 따지면 굉장히 센 편이었지만, 한 시간 동안 수업을 하는 게 굉장히 많은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라 수업을 연달아 잡아두진 않았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돼버리면 나는 반나절의 시간이 텅 비어버리는 거였다.

너무 아쉬웠지만 나에게는 그 수업료가 반나절의 일당만큼 절박한 큰돈일 뿐, 대만 친구들에게는 단지 가벼운 한국어 과외였지 않았을까 싶다.

비단 한국어 수업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약속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한번 아주 친한 대만 친구들에게 "대만 사람들은 왜 그렇게 약속을 쉽게 취소해?"라고 물으니, 어떤 친구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고, 어떤 친구들은 아마 문화 차이 일거라고 한국인들은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 같은데 대만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었다.

그렇다고 모두가 약속을 쉽게 취소하는 건 아니고 한국에도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듯이 이것도 일종의 케이스일 뿐 시간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고 엄수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저번에 수업 약속을 취소했다가 다시 만난 학생들은 미안함의 표시로 작은 간식을 사 온다거나 그다음 수업은 꼭 오겠다고 약속하고 꼭 지키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나 내 생각에 대만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약속이라는 것을 우리나라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 확실하다.

처음에는 나쁘게만 생각됐던 이런 문화 차이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이해되기도 했다.

나도 대만 생활에 녹아들면서 정말 중요하지 않은 약속은 가볍게 취소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대만 친구들은 약속을 쉽게 취소하는 만큼, 취소당하는 것에도 크게 반감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신경 쓰고 살다 보니 점점 각박해지고 지치는 한국인들보다 대만 사람들이 평화로워 보이는 건 작은 건 작은대로 가볍게 여기는 여유로운 생각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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