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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내가 대만으로 떠났던 이유

by 늘보랑 2022.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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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끝자락에 갑자기 외국으로 가겠다 선언!

이십 대 중반쯤 남자 친구를 사귀게 되는데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것과 너무 다른 인생을 산 사람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중국, 미국, 뉴질랜드에서 학 창시절을 보내 중국어, 영어에 능통했다.
외국어를 잘해서 멋있는 느낌보다는 그저 외국에서 살다 온 게 너무 신기했다.
같이 얘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대화에 빠져들었었는데 종종 들려주던 유학시절의 에피소드는 정말 재밌고 흥미로웠다.
중학교 시절부터 일본어에 많은 흥미를 가지고 대학시절까지 끌고 가 결국 자격증까지 땄지만 독해 실력에 비해 회화실력이 너무 부족했던 나는 일본에 가서 사는 게 꿈이었지만 이렇다 할 계기를 찾지 못하고 미적지근하게 살고 있었는데, 그때 만났던 그 사람의 여러 경험담은 이미 다 식어 잿더미였던 나의 외국어에 대한 열정에 다시 불을 지폈다.

그 사람의 화려하고 파란만장한 과거가 너무 부러웠다.
그때의 나는 곧 29살을 바라보고 있었고, 결국 나의 마지막 20대에 뜻깊은 추억을 만들고자 회사를 과감히 퇴사하고 어학연수 계획을 세웠다.
응원의 말보다는 "그 나이에 외국을 왜 가냐"라는 말이 훨씬 많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실 외국에 가기 전의 나라도 친구가 29살에 유학을 간다고 하면 말릴 것 같지만, 다녀온 현재의 나는 무조건 찬성할 것이다.
내가 직장 생활하며 모은 돈을 어학연수를 하면서 거의 다 썼고 한국에 돌아왔을 땐 남은 게 거의 없었지만 그때도 지금도 전혀 아쉽지가 않다.
내가 그 나라에서 만들었던 추억과 행복 그리고 경험은 절대 절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고, 그보다 더 큰 값어치를 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종종 해주시는 말이 있는데, "네가 공부하러 외국에 다녀온 건 정말 잘한 거야, 정말 대견해"
칭찬에 인색한 엄마가 느낄 정도로 나는 정말 행복한 외국생활을 하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한 번도 반대하지 않으셨고 낯선 땅에 혼자 가는 것만 극도로 걱정하셨다.
내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허투루 한 말이 아닐 것이라는 것과 뭐든지 끝을 내야 직성이 풀리는 책임감이 강한 아이라는 걸 믿으셨던 것 같다.
친인척도 없고 하물며 건너 건너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이 맨땅의 헤딩으로 떠났던 내가 막막함과 두려움이 없었다면 정말 거짓말이고 엄마의 걱정대로 나는 잘 헤쳐나갔지만 외국생활 극 초기에는 매일 울면서 지냈었다.

나는 일본에 가지 않았다.
직장을 그만둘 때 외국어 공부를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고 회사 대표가 그랬다.
일본어를 더 배우고 싶다고 말했더니 "이미 기울어져가는 일본어 더 공부해서 뭐하니, 이왕이면 중국어 공부를 하러 가라. "
사실 처음에는 일본어에 대한 동경이 많아 그래도 난 일본으로 꼭 가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곰곰이 생각해보니 중국어 수요가 훨씬 많을 것 같았고 지금 필요한 건 중국어고 내가 다녀와서 뭔가 내밀려면 일본어보다는 중국어가 낫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나는 중국어를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어 고민하던 찰나 나에게 익숙한 일본어 한자, 대만의 번체를 알게 되고 대만으로 가기로 굳힌다.
그렇게 나는 대만에서 어학당을 등록해 12월29일 내 생일에 비행기를 타고 대만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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