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도착한 첫날 순조롭게 어학당 등록을 마치고 기숙사를 배정받았다.
내가 학기 동안 머물 기숙사는 4인 기숙사로 여자 기숙사였다.
나는 잠귀가 굉장히 밝고 예민한 편인데 타국에서 혼자 지내는 게 더 무서울 것 같다고 생각해서 4인 기숙사를 선택한 거였는데 이건 엄청나게 큰 오산이었다.
기숙사 사무실에 가서 이미 결제한 기숙사비 영수증을 보여줬더니 3층 305호를 배정해줬고, 짐을 가지고 들어갔다.
벙커침대로 아래는 책상 위는 침대의 형태였고 내가 입실할 때 그 방에는 단 한 명이 지내고 있었다.
그 한 명의 룸메는 여행을 갔는지 나의 대만 기숙사 생활 첫날부터 일주일째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첫날 대충 짐 정리를 하고 누웠는데 캄캄한 방에 혼자 있으니 너무 무서웠다.
나 혼자 대만이라는 나라에 왔고 엄마 아빠 없이 이렇게 쭉 혼자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두렵기도 했고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막연한 두려움이 몰아쳐서 밤새 울었다.
그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아무도 없을 때 실컷 울자는 마음으로 낮에는 밖을 나가 보기도 했지만 밤에는 매일 울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일주일이 지나고 나의 룸메가 왔다.
우크라이나였나 우즈베키스탄이었나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기억이 안 나고 서양인이었다.
서로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몇 살인지 대략적인 정보를 주고받고 서먹하게 인사를 했다.
나는 영어를 그다지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다를 떠는 건 불가능하기도 했지만, 그 사람 자체도 무뚝뚝한 성격인 듯싶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지내면서 알게 된 한국인 동생이 나의 룸메가 누군지 알게 되자마자 그녀를 조심하라며 간략의 정보를 건넸다.
그 정보를 건네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이기적인 만행이 시작됐다.
같이 지내는 방이었지만 누군가와 몇 시간이고 통화를 했고 통화는 새벽시간까지 이어졌다.
몇 번 부탁과 경고를 건넸지만 알았다는 말뿐 통화를 그만두지 않았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남자 친구를 기숙사에 데려와서 놀았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누구나 예상하듯 그녀는 역시 작고 하찮아 보이는 동양인인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고 매주 매일 남자 친구를 데려왔다.
기숙사 사무실에 가서 나의 상황을 몇 번이나 알렸지만 경고조차 주지 않고 그저 잘 얘기해보라는 말 뿐이었다.
너무너무 스트레스를 받던 중 나에게 정보를 줬던 기숙사 동생에게 이 사실을 알리니 나를 대신해서 따져주겠다며 찾아왔다.
원어민 수준의 영어로 멋짐을 장착한 동생이 기숙사 사무실에 가서 엄청난 컴플레인을 걸고 결국 기숙사 사무실 관리자를 대동해 내 방에 와서 막장 룸메와 룸메 남자 친구를 마구 다그쳤다.
큰소리가 오고 가며 싸움이 났고 결국 그들은 기숙사 관리자에게 경고를 받고 방을 나서면서 나에게도 욕을 퍼붓었다.
결국 나는 보복성을 우려해 방을 바꾸게 됐고 일주일 만에 다른 방으로 이사를 하는 결론을 내렸다.
상황이 그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는데 결론적으로 보면 나의 완패였다.
그들이 방에서 나가고 멋진 동생까지 방을 떠나고 상황이 정리되면서 나 혼자 방에 남았을 때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엉엉 우느라 두루마리 휴지 한 롤을 다 썼다.
왜 대만에 오자마자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좋은 일만 있을 것 같던 내 예상이 단 며칠 만에 빗나간 이 이상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알고 보니 처음 학교에 와서 사귀게 된 일본인 친구들도 같은 방을 썼고, 영어를 잘하는 멋진 동생의 룸메들도 다 한국인이었다.
심지어 그 막장 룸메는 이전에 다른 방에서도 문제를 일으켜 거의 혼자 지내던 아이였다는데 왜 나를 그 방에 넣은 건지 이해가 안 됐다.
기숙사 사무실 관리자도 원망하고 서양인 룸메도 원망하고 이런 상황에 놓인 나를 원망하며 흘린 눈물 콧물을 닦으면서 만든 엄청나게 쌓인 휴지산에 분노와 원망을 첨가해 고이 모아 봉지에 꾹꾹 눌러 담아 쓰레기 통에 버렸다.
다시 짐을 싸서 305호 방을 나서면서 나쁜 생각은 다 그 방에 버려버리고 문을 닫아버렸다.
대만에 온지 일주일만에 내가 다시 옮겨가게 된 기숙사 방은 5층의 503호였고 그 방에는 천사 두 명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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