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으로 처음 갔을 때 대만에 가서 중국어를 배우면 중국어가 엄청 빨리 늘 거라고 생각했다.
어학당에 다니면 어학당이 소속된 대학교에 다니는 대만 친구들을 사귀면서 대만 친구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학당은 다른 건물에 위치해 있어서 현지인과 마주칠 일이 전혀 없었다.
물론 교내 캠퍼스를 걸어 다니면서 대학생들과 마주치는 일은 많았지만 친구가 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어학당에 다니게 되면 수준별로 나뉘어서 레벨별로 반이 나뉘는데 대부분 자신의 언어 레벨과 맞는 외국인 친구들과 많이 사귀게 된다.
물론 영어를 잘 하면 레벨 상관없이 누구와도 금방 친해질 수 있지만 나는 그게 아니므로(...) 순차적으로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국인이 압도적으로 많고 대화가 통하다 보니 한국인들하고 많이 어울리기도 했고 그나마 나에게 안전빵인 일본인 친구와 친해졌었다.
그 일본인 친구는 굉장히 예쁘고 소심했다.
프사는 굉장히 개구쟁이 같았는데 어학당 수업에만 들어오면 굉장히 조용했다.
어학당의 수업진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했고 관심도 없어 보였으며 나중에는 실력이 너무 뒤떨어지자 며칠 나오고는 수업에 전혀 나오지 않았다.
회화시간에만 수업을 듣는 캐나다인 남자도 있었는데 수업 진도를 전혀 따라오지 못해 나의 짧은 영어로 몇 번 수업을 도와줬더니 학교 근처에 올 때마다 나에게 연락을 해왔지만 수업에는 나오지 않았다.
(재미있는 외국인 남자들 썰은 나중에 다른 글에서 풀겠다. )
첫 레벨의 1학기는 말이 통하지 않아서 같은 클래스에 있는 한국인들을 제외하면 그저 간단한 안부 외에는 대화가 불가능해 친해지지 못했다.
그렇게 다음 2학기가 되면서 어느 정도 간단한 말을 구사할 수 있었고 같은 클래스에 있는 친구들과 밥도 먹으러 가고 쇼핑을 가기도 했다.
그때 친하게 지냈던 인도네시아 출신 친구들은 전부 홍콩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교환학생으로 대만 어학당을 왔다고 했었는데 나중에 시간이 한참 지나고 페이스북에서 근황을 보아하니 인도네시아에서 굉장히 부자인 친구들이었다.
어쩐지 인도네시아에서 직접 온 친구들은 한 명도 없었고 왜 다 홍콩에서 온건가 싶었는데 홍콩에 유학을 갈 정도면 부자인 거고 교환학생으로 오는 건 더 부자였다.
당시 친해졌던 다른 일본인 친구는 대만에 있는 남자와 랜선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목적으로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어학당에 왔다고 했다.
그 대만인 남자친구는 식당을 운영 중이었는데 그 식당에 같이 가서 밥을 먹기도 했고 인사도 나눠었었는데 굉장히 젠틀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식당으로 방문했던 날 그 대만인 남자 친구는 내 일본인 친구에게 파란 작은 종이가방을 건넸다.
대충 봐도 티파니 앤 코 종이가방이었고 안에는 예쁜 목걸이가 들어있었다.
일본인 친구는 너무 좋아했고 정말 행복해했다 얼른 중국어를 마스터해서 결혼하고 싶다고 툭하면 결혼계획을 풀어놨다.
그리고 2~3일쯤 지나 그 대만인 남자 친구가 밑도 끝도 없이 그냥 헤어짐을 고했다.
내 일본인 친구는 충격으로 인해 다음 학기에 바로 일본으로 돌아가 버렸다.
내가 살면서 겪은 황당한 이별 베스트 3 안에 들 정도였다.
나와 초급반부터 같은 반이었던 한국인 유부녀 언니가 한분 계셨는데 친언니의 쌍둥이 딸 중에 한 명이 나랑 너무 닮았다며 정말 예뻐해 주셨다.
남편분 회사일로 가족들이 전부 대만으로 온 거였는데 정말 으리으리한 아파트에 살고 계셨다.
한국인들을 싹 초대해서 떡볶이와 김말이를 만들어주시기도 했고 내가 아파서 학교에 못 나가면 직접 죽을 쒀서 과일과 함께 포장해서 친구들 통해 기숙사까지 갖다 주기도 하고 한 번은 김치를 싸다 주셔서 수업시간 내내 교실이 김치 냄새로 가득 차기도 했었다.
언니와도 잘 지냈지만 두 번째 학기까지만 듣고는 수업을 따라가는데 어려움을 느껴 과외를 하겠다고 하시고는 학교를 그만두셨다.
그리고 다른 반에 50대 후반의 한국인 아저씨가 계셨는데 정말 좋은 분이었다.
중국어 공부도 정말 열심히 하셨고 실력도 좋으셨는데 경상도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자꾸만 성조를 틀렸다.
정말 공부에 대한 열정이 높으신 분이었는데 수업시간에 ppt로 발표하는 과제가 많은 편이었지만 컴퓨터를 잘 다루실 줄 모르셔서 스케치북에 일일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서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발표를 하기도 하셨었다.
가끔은 한국인들을 싹 데려다가 비싼 훠궈를 사주기도 할 정도로 정말 좋으신 분이었다.
기숙사 창문을 열어두고 외출하셨다가 원숭이 똥 테러를 잔뜩 당하셔서 원숭이 똥이 아주 처발라진 이불을 세탁소에 맡기러 내려가시던 처량한 뒷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어학당 생활을 하면서 단순히 기억에 남는 사람들에 대해서 써봤다.
어학당을 1년 정도 다녔지만 3학기 정도 즈음부터는 중국어 대화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외국인들보다는 대만인들하고 많이 어울리게 돼서 이 작은 에피소드 외에 외국인 친구들에 대한 추억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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