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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대만 어학당으로 가다.(4)

by 늘보랑 2022.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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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 도착해 적응하랴 공부하랴 너무 정신이 없었고 결국은 몸에서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배탈이 심하게 났구나 싶었지만 아랫배가 많이 아파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였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상비약을 아무리 털어 넣어도 열이 내리지도 배가 나아지지도 않았다.

며칠을 설사를 하고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앓다가  결국 나는 병원을 가기로 한다. 

 

대만으로 오기 전 유학생 보험을 제일 비싸고 좋은걸 가입했었다. 

한국에서도 몸이 약하고 잔병치레가 많아 잘 자다가도 새벽에 깨서 계속 토하거나 하루 종일 열이 나고 토하는 일이 잦았다.

한창 꿀잠에 빠진 새벽시간대라도 내가 아프면 아빠는 벌떡 일어나 나를 태우고 응급실로 향했었다.

대만으로 떠난다고 했을 때 아빠는 그저 "네가 아프면 병원에는 누가 데려다주냐"라는 말만 연신 하셨었다.

내가 가입한 유학생 보험은 6개월에 25만 원 정도로 시중에 나와있는 유학생 보험 중에 가장 비싼 보험이었고 엄마의 권유로 가입했고 엄마카드로 결제해주셨다.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정말 많이 받고 사는 딸이다.

 

비싼 유학생 보험은 값어치를 했다.

병원에 갈 일이 생겨서 신청을 하면 한국에서 대만 현지 병원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해주고 비용도 직접 지불해주고 필요하다면 동시통역 서비스까지 가능한 말 그대로 나는 몸만 갔다가 몸만 빠져나오면 되는 좋은 시스템의 유학생 보험이었다. 

대만 현지에서 보험회사에 전화하는 일이 어려워 언니가 근무 중에도 나 대신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대만에 있는 나에게 전화가 오게끔 해줬다. 그게 일주일에 몇 번 인적도 있었지만 언니는 귀찮은 내색 없이 항상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나를 대신해 병원과 연결을 시켜줬다. 

 

한 번은 정말 크게 아파서 대만의 응급실로 향했다.

너무 다행스럽게도 의사가 한국에서 공부를 한 적이 있다며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짧은 한국어로 나와 의사소통을 했다. 

"설사 있어요?"

"배가 아파 어디요?"

"인자 배를 ~ 인자 앉아서.."

열이 38도가 넘는 와중에도 의사가 하는 인자 인자 라는 말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날 정도였다.

상황이 심각해 입원해야 한다고 했지만 대만 현지에 보호자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링거 한번 맞고 집에 가게 됐다. 

간호사가 저기 "다섯"에 누우라며 5번 침대를 가리켰다.

한국어 할 줄 아냐고 물어보니 한국어를 좋아해서 공부하고 있다고 했는데 아마 나 때문에 한국어 할 수 있는 간호사를 호출한 것 같았다. 

그리고 시간이 다 돼서 나를 깨우러 왔고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짧은 한국어로 열심히 설명해줬다.

벌써 5년 전의 일인데 아직도 기억나는 거 보면 정말 좋은 기억이었던 것 같다.

 

또 한 번은 또 심하게 아파 큰 병원을 가게 됐었는데 증상이 이상해 부인과까지 가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부인과까지 넘어가게 돼서 전문용어가 오가는 상황이 되자 영어로도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통역 신청을 했지만 이용자가 많아 연결이 되지 않았다.

당황해서 어떻게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으니 의사가 직접 핸드폰을 열어 구글 번역기를 켜서 영어-> 한국어로 나의 병명, 증상, 주의사항 등 빠짐없이 천천히 써서 보여주었다. 

외국인이라 귀찮아서 대충 보낼 만도 한데 진료실에서 30분 가까이 세세하게 써서 번역해서 보여주고 나를 이해시켰고 다음 진료 날에도 똑같이 해주었다.

정말 자주 느낀 점이지만 대만에는 정말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이 많다. 

 

그 뒤로도 나는 자주 아파서 대만에 있는 6개월 동안 병원에 자주 들락날락했고 체중이 39kg까지 빠졌었다.

그렇게 6개월간 엄청나게 아프고 나서 한국에 들어갔다가 다시 가입하려고 하니 이용금액이 지불 비용보다 너무 초과해서 가입이 거절됐다.

근데 나는 적응기를 세게 보내서 그런지 그 뒤로는 많이 아프지 않고 남은 시간을 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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