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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자존감 도둑 이야기

by 늘보랑 2023.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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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삼십 대 중반을 넘어가는 나이이다. 

예전이라면 노처녀, 현대에서도 노처녀지만 요즘 사회적 분위기에 묻어간다면 아직은 조금 덜 노처녀. 

작년까지는 직장에 다녔고 올해에는 실업급여를 받다가 이런저런 이유 혹은 핑계로 오전에는 고정 아르바이트, 오후에는 비고정 단기 아르바이트를 한다. 

 

삼 개월 전 집 바로 앞에 오전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집에서 걸어서 2~3분 거리였고 관련 경력은 없었지만 단순 노동이기도 하고 회사가 집 근처라서 쉽게 뽑혔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나랑 비슷한 나이또래들이었지만 쉽게 친해지진 못했다. 

친해질 시간도 없었다. 

워낙 바쁜 곳이었고 평생 서비스직, 외국어 계열 인 나랑은 교집합이 하나도 없었으며 오전에 미친 듯이 일을 하다가 그들이 숨을 돌릴 즈음 나는 퇴근을 했다. 

삼 개월이 지났으니 하는 얘기지만 다들 정말 좋은 사람들이다. 

딱 한 명, 나이대가 다른 그 사람만 빼고.

 

그 사람은 나에게 결혼을 왜 안 하는지 물어봤다.

삼십대라면 누구나 으레 들을법한 의미 없는 질문 중 하나였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없으면 사회적인 나이에 걸맞게 투명하게 만든 질문 리스트처럼 똑같은 질문을 해댄다.

십 대에게는 성적을, 이십 대에게는 회사를, 삼십 대에게는 결혼을.

서른다섯이 넘으면 똑같이들 물어오는 결혼질문에 대한 똑같은 대답 방패라는 게 만들어진다.

나는 역시 똑같은 대답을 했는데, 그 사람은 나의 대답 방패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오전 한 시간 동안은 그 사람과 나만 출근해서 일을 시작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 한 시간 동안 나에게 왜 결혼을 안 하는지, 요즘 다들 왜 결혼을 기피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며 계속해서 나를 공격했다. 

나는 며칠 동안 같은 대답을 반복해서 피하거나 막거나 어떤 날은 날이 선 말로 맞공격을 가하기도 했다. 

자기는 옛날사람이고 꼰대라서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고 당당하게 외쳐댔다.

삼 개월동안 지켜본 결과 끊임없이 자신의 다르거나 틀린 생각을 남에게 관철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 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남이 하는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자기 생각을 큰 목소리로 질러대는 대화의 예절이 없는 사람이었다. 

술을 즐기는 자신과 다르게 술을 전혀 먹지 않는 나를 늘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지 않고 왜 이런 알바 따위를 하는지 나를 늘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5층까지 계단으로 걸어 올라오는 나를 마주칠 때마다 매번 왜 계단으로 올라오는지 질문하며 나를 늘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자신의 그 고리타분한 관념과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과 너무나도 다른 나를 늘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술을 먹지 않아도 이 세상에는 즐길게 많으며, 풀타임 직장에 다닐 때보다 오히려 시간과 수익이 더 많고, 운동삼아 걸어 올라온다고 열 번은 말한 것 같은데 그 사람 머릿속에는 지우개가 있는 건지 아님 자신의 생각과 다른 값은 아예 두뇌에 데이터로 인식이 안 되는 건지 당최 모르겠다. 

 

그렇게 처음부터 가깝지 않았던 그 사람과 나는 서로를 모를 때보다 더 멀어졌다.  

 

그 사람은 자기 생각이 100% 다 맞다고 우기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 생각을 용인할 생각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가 없다.

자기가 심심하면 가끔 스몰토크를 던지지만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도 않으며 다 같이 있을 때는 부드러운 척 착한 척 몇 마디 걸기도 하지만 단 둘이 있을 때는 말을 걸지 않거나 늘 차가운 말투로 나를 대한다.

위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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