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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자존감 도둑 이야기 2

by 늘보랑 2023.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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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트타임 알바이고 오전에만 일하고 퇴근을 한다.

종종 나에게 퇴근하고 나서 뭐 하냐고 물었고 나는 대부분 오후엔 알바를 하러 간다고 했었다. 

주말에 뭐 했냐고 물었을 때도 나는 일을 했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왜 그렇게 일만 하냐고 돈 그렇게 벌어서 어디에 쓸 거냐고 끊임없이 물어댔다.

(그때쯤 일이 많이 겹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을 했던 것뿐이고 지금은 많이 놀고 있다.)

한 달엔 얼마나 버는지, 지금까지 얼마나 모았는지도 물었다. 

글자에는 결코 묻혀낼 수 없는 그 사람만의 이상하게 비꼬는 말투가 있는데 늘 나에겐 그런 말투였다. 

사실 드러내는 걸 싫어하는 성격인데 나도 점점 악만 남았는지 심술이 생겼다.

다 늙어서도 돈이 없어서 전세 살고 있는 그 사람 콧대를 콱 눌러버리고 싶었다.

나는 이번달에 얼마를 벌었다고 말했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 사람은 질문만 할 뿐 내 대답은 듣지 않는다. 

돈을 왜 그렇게 열심히 버냐, 집 살 거냐, 뭐 하려고 그렇게 돈을 열심히 버냐, 부자 될 거냐, 

수없이 많은 질문들을 쏟아냈고 내가 대답할 틈은 주지 않았다. 

자기가 궁금한 것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고 대답은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단정 지었다. 

 

인생을 좀 즐기면서 살아야지 왜 그렇게 일만 하냐고 비꼬듯이 늘 물었다. 

열심히 산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왜 그렇게 일만 하냐고 비꼬는 질문은 처음 들었다.

그 사람은 술을 굉장히 좋아하고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다.

술도 안 마시고 인생을 무슨 재미로 사냐는 말을 오십 번은 넘게 들은 것 같다. 

 

나는 일 년에 해외를 2~3회 나가고, 시간이 나면 국내라도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갖고 싶은 물건은 꼭 사는 편이고 먹고 싶은 음식도 꼭 먹는 편이다. 

술과 커피를 즐기지 않지만 차 마시는 것을 좋아해서 티 전문 카페를 가거나 좋아하는 티 브랜드를 사서 쟁여놓고 즐기기도 한다. 

나는 돈도 열심히 모으면서 충분히 재밌게 내 나름대로의 인생을 즐기며 살고 있다. 

 

회사는 5층이었는데 나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 운동삼아 걸어 올라가 곤했다.

나보다 늘 먼저와 있는 그 사람과 가끔 계단에서 마주쳤는데 정말 이상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왜 걸어 올라오냐고. 

운동삼아 걸어 올라온다고 대답했고, 이후 그 이상한 표정의 질문과 나의 뻔한 대답은 다섯 번 넘게 반복되었다.

계단에서 나를 마주칠 때마다 같은 표정으로 같은 질문을 했다.

운동삼아 걸어 올라온다고 여섯 번은 말했는데 아마 다음에 또 마주치면 또 물어보겠지.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왜 힘들게 걸어오냐고 계속 물어대고 나는 운동삼아 걸어 올라온다고 대답하고.

 

정말 무서운 건 삼 개월쯤 지나니 거기 있을 때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인 착각이 든다. 

돌려까면서 은근히 나만 특이한 사람인 취급을 하는데 나는 그것이야말로 일반화의 오류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나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내가 지금 알바를 하면서 프리랜서로 돈을 벌고 있다는 게 가끔 내가 한심하단 생각이 들기도 하고,

5층 계단을 운동삼아 걸어 올라가는 게 눈치 보여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기도 한다.  

이게 소위 말로만 듣던 가스라이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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